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중국 진시황에 대하여 알아보자
진시황제 –
진 나라의 시 최초 황 제 라는 말이다.
황제라는 말을 가장 먼저 쓴 사람으로서
진시황의 성은 영(嬴), 이름은 정(政)
그래서 이름이 영정이다.
영정은 13세의 어린 나이로 진나라의 제31대 왕의 자리에 즉위한 후
후대에 길이길이 남길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진시황과 관련된 몇가지 사건들과 사고,
그리고 오해들에 대해 짚고넘어가보자 한다.
우선 첫번째로 만리장성.
대중들에게는 진시황이 북쪽의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알려져있으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았다’라고는 볼 수는 없다.
진시황 때에 기존의 성곽들을 잇고
부족한 부분을 새롭게 축조하며 쌓기 시작하였으나
당시의 장성은 현재의 장성보다는 북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대부분 흙으로 쌓은 것이었기에
현재의 장성과는 높이도 낮았다는.
후대에 조금씩 보수하고 재건축하며 현재의 만리장성이 되었다는 사실.
두번째 중국 전국통일.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던 인물- 바로 진시황이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현재 중국의 시초가 진시황이라고나할까.
진시황은 기원전 230년부터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전국 통일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 –
가장 세가 약했던 ‘소한’을 멸망시킨 것을 시작으로
조나라, 위나라, 초나라, 연나라, 제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며
40세 불혹의 나이에 마침내 전 중국 땅을 통일하기에 이르렀다.
세번째 바로 분서갱유 (焚書坑儒).
분서갱유는 분서(焚書)와 갱유(坑儒)로 나뉘며
분서는 진시황의 명령으로 인해
당시 농경/역사/의술 책들만 제외하고 모든 책들을 불태워 버린 것 –
갱유는 460여명의 불온사상가로 몰린 이들을
구덩이에 산채로 파묻은 사건이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사상 탄압으로 인해 진시황은 단방에
‘폭군’ 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네번째는 바로 아방궁.
진시황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호화찬란 어마무시한 궁전 ‘아방궁’이다.
<사기>에 의하면 아방궁은 동서로 600-800미터,
남북으로 113-150미터에 이르는 건축물로서
건축에 동원된 인원만 70만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했다.
진시황 때에 만들기 시작하였으나
정작 진시황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
후대에 이르러서도 계속 만들던 중 초나라 항우가 수도를 점령 –
아방궁으로 보고 입이 떡 벌어지고,
에라이씨 하면서 불태워버렸는데 –
불타는 시간은 3개월하고도 10일이 더 걸렸다는 썰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마지막으로 진시황은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했다.
뭔소리냐고?
왕이 중앙을 통치하고
그 외의 지방은 왕족이나 공신들을 제후로 임명하여 통치하였던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나라 전체를 군과 현으로 쪼갠 뒤
중앙 정부 소속 관리들을 지방으로 파견한 군현제를 전격 실시 –
군현제 덕에 진시황은 진나라의 중앙집권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진시황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진시황과 관련된 영화들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
그 중에 주효문 감독의 ‘진송’과
장이머우 감독, 이연걸, 견자단, 장쯔이, 장만옥, 양조위 주연의 ‘영웅’을 추천한다.
진송 (秦頌, The Emperor's Shadow, 1996)
영웅 (英雄: 천하의 시작 Hero, 2002)
2,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길이길이 기억된 그 이름 진시황제 –
2018년 현재 중국의 금기어 시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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