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6월항쟁이 있었다면,
중국의 “1989” 천안문 항쟁은 무엇일까?
최근 1987년 민주화 운동인 6월항쟁을 기초로한 영화가
전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민주화 운동이 중국에서도 있었다는데,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발생한 민주화 운동,
천안문 6.4항쟁은 어떤 사건인지 알아보자
천안문 사건은 1989년 중국의 민주화
시위를
정부가 무력 진압한 유혈 참사 사건을 말하는데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차기 주석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을 청산하며,
기존 다같이 벌고 다같이 나눠 살자는 공산주의체제에서,
능력껏 벌어 먹자는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게된다.
이 과정 속 사유제가 시행되고 국가 산업이 민영화 되며,
부동산 투자가 활성화 된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이권을 남용한 하급 관료의 부패가 심각해져,
부정부패한 관료들은 개발 정보를 독점하여 떼돈을 벌었고,
심각한 빈부격차와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
더불어 실업문제로 노동자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이런 시기 개혁개방으로 동서양의 문물을 보고 각성한 대중들은
중국 일당독재 정치제도에 대한 민주화를 추진,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다당제 등을 반영한 정치개혁과
부정 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학생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커지며
학생운동이 시작하게 된다.
마치 한국의 1980년대 대학교처럼
중국 각지의 대학교에서는 민주화 서클이 활발히 활동하였는데,
실제로 당시 시위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우얼카이시는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이 천안문 저항의 모델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이같은 민주화 요구에 동조적이었던 정치인 후야오방의 사망을 기점으로,
학생들의 시위는 단식투쟁으로 이어졌고,
그 모습에 자극 받은 노동자, 언론인, 의사, 교수, 공무원부터 9살, 백발 노인까지
천안문 광장에는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범대중적 평화 시위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89년 6월4일,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의 피는 반드시 보라."
라는 덩샤오핑의 무력 진압 명령이 내려지며,
공산당은 민중들의 목소리에 전차와 총포를 동원한 학살로 대답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실종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나,
약 2,000명에서 7,000명 정도의 사망인원이 추정되고 있다.
학자들은 이 사건을 ‘베이징 대학살’, ‘육사(六四)사건’,‘천안문 저항’이라 하지만,
중국 당국에서는 없던 일로 치부하며 공식명칭이 없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검열이 되어 ‘5월 35일’로 검색해야 된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지금은 검색되지않는다.
이후 중국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강력한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며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에 한발 다가선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1989년 천안문6.4학살로 강력한 일당체제를 유지하며
지금의 경제대국을 이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수 많은 목숨의 희생은 퇴보된 중국 민주화의 아픈 상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과연 중국에서는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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